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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겪고도 10년간 남은 이유 “학교와 유가족이 이어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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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한 작성일24-04-19 03:11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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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트라우마 치료 후 복귀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운동유가족·재학생 연극도 ‘결실’
올해 초 개인 사정으로 떠나끝까지 기억하는 게 내 소명
2014년 4월16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특수교사 김덕영씨는 특수학급 학생들을 인솔해 김포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설레는 수학여행이었다. 제주도에서 본 학급과 만나기로 약속한 터였다. 그러나 김씨와 아이들은 제주도에 가지 못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에 황급히 발길을 학교로 돌렸다.
학교는 아수라장이었다. 생존자 명단을 파악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며칠 전까지 살갑게 인사하던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학부모들이 학교를 찾아와 오열했다. 같이 울었다. 그때부터 세월호는 김씨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됐다.
억지로 일에 파묻혀 지냈다. 그러면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였지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던 이지혜·김초원 인스타 팔로우 구매 선생님의 순직 촉구 운동을 벌였다. 2017년 두 선생님의 순직이 인정됐다. 참사 후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 직후 개인적 사정으로 휴직을 했다. 트라우마가 몰려왔다.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놓으면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김씨는 약 1년여간 병원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았다.
참사 당시 함께 있었던 교사들은 하나둘 다른 학교로 발령 났다. 기간제 교사였던 김씨는 4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며 학교에 남았다. 김씨는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학교에 한 명은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학교 간 관계의 물꼬를 트려고 노력했다.
결실도 있었다. 2021년 12월30일 단원고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준비한 극 <장기자랑>이 열렸다. 김씨는 여러 차례 일정 취소와 설득 끝에 이뤄낸 결과였다며 단원고는 당사자 학교인 만큼 더 유가족을 포용하고 먼저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신청한 재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416공방 애프터클래스’ 수업이 진행됐다. 강사로 나선 유가족들이 재학생과 만났다. 김씨는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유가족들이 어렵게 느껴졌는데 막상 만나보니 동네 어머니, 이모 같다’는 반응을 보였을 때 뿌듯했다고 말했다.
학교 풍경은 달라졌다.
참사 후 중단됐던 수학여행은 지난해 재개됐다. 지난해 2월 학교에 ‘마을공동체 개방형 사회적 협동조합’ 공간이 마련됐다. 단원고 재학생과 졸업생 등이 운영하는 카페 및 휴게공간이다.
이곳에서 유가족과 단원고 학생들 간의 접점을 넓혀가는 게 김씨의 목표다.
2009년부터 단원고에서 근무한 김씨는 올해 학교를 떠났다. 떠난 이유에 대해 개인적 사정이라며 말을 아낀 그는 지금도 ‘내가 그 배에 타고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며 참사 이후 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고, 세월호를 끝까지 기억해야 하는 소명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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